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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과 돈

첫 월급 받던 날, 어머니 내복부터 샀습니다

1971년 겨울이었습니다. 공장에 취직해 첫 월급을 받았는데, 봉투에 담아 건네주더군요.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어머니 내복이었습니다. 그해 겨울 어머니는 변변한 내복 한 벌이 없으셨거든요. 시장에 가서 내복 한 벌을 사드렸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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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으로 재생2
힘들었던 시절

보릿고개, 요즘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봄이면 먹을 게 없어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러 다녔어요. 배는 고팠지만 그래도 서로 나눠 먹었지요. 지금 풍요로운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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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으로 재생1
음식과 유행

설탕 넣은 토마토, 그게 최고 간식이었습니다

여름이면 토마토를 썰어 설탕을 솔솔 뿌려 먹었지요. 요즘은 설탕 넣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때 그 새콤달콤한 맛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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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으로 재생1
동네와 이웃

옛날 이웃이 정말 더 좋았을까요? 저는 반반입니다

정이야 많았지요. 그런데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게 꼭 좋기만 했나 싶어요. 참견도 많았고 시집살이 소문도 동네가 다 알았으니까. 좋은 것만 기억하는 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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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으로 재생0
힘들었던 시절

가뭄에 논이 쩍쩍 갈라지던 그 여름

농사꾼에게 가뭄만큼 무서운 게 없습니다. 하늘만 쳐다보며 애를 태웠지요. 비 한 방울이 그렇게 귀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쌀이 어떻게 오는지 잘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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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논산훈련소 그 연병장,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스무 살에 논산에서 훈련받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힘들었지만 그때 만난 전우들이 평생 친구가 됐어요. 지금은 다들 연락이 끊겼지만, 가끔 그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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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실 난로 위에 도시락 삼층으로 쌓던 기억

겨울이면 난로 위에 도시락을 층층이 올렸지요. 맨 밑에 놓으면 밥이 눌어붙고, 맨 위는 차갑고. 그 눌은밥이 또 별미였습니다. 당번이 난로에 조개탄 넣던 것도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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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시절

태풍에 배가 흔들리던 밤, 살아 돌아온 게 복입니다

먼바다에서 만난 태풍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 듯했지요. 무사히 항구에 닿았을 때, 땅을 밟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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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시절

그래도 함께라서 따뜻했던 시절

참말로 옛날 생각만 하모 가슴이 짠합니더. 내가 스무 살에 시집 와 전쟁 직후라, 먹고 입는 게 참 귀했지예. 식구는 많고 농사도 안 돼 겨울 아랫목은 늘 차가웠지예. 그래도 밤낮없이 바느질하고 새벽부터 아궁이 불 때던 날이 수두룩했지예. 그래도 애들 키우는 게 큰일이었지예. 보리밥이라도 굶기지 않을라꼬 부엌에서 종종거렸습니더. 애들 감기라도 들면 약도 없어 밤새도록 손발 주물러주던 기억이 생생합니더. 어찌 보면 그 시절에는 다들 그래 살았지예. 그래도 옆집이랑 품앗이하며 김장하고 애들도 같이 돌봤지예. 힘들어도 함께 이겨내야 하는 마음이 컸습니더. 지금 생각해보모, 그 시절 우리 마음이 참 따뜻했지예. 자식들이 이리 잘 사는 걸 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싶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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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과 돈

곗돈 타던 날, 온 동네가 잔치였습니다

그때는 은행보다 계가 먼저였어요. 곗돈 타는 날이면 그 집에서 국수를 삶아 이웃을 대접했지요. 서로 믿고 의지하던 그 마음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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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유행

음식 유행, 참말로 변하네예

우리 어릴 적에는 먹을 게 귀했지예. 밥 한 술 뜨는 것도 일이었심더. 텃밭에서 나는 채소로 장아찌 담고, 콩 심어서 두부 만들고, 그런 게 다였지예. 명절 때나 소고기 한 점 맛보지, 평소엔 꿈도 못 꿨심더. 그래도 고구마 한 개라도 정성껏 삶아서 식구들 나누어 먹으면 그게 그리 맛났지예. 그 시절 음식은 그냥 배 채우는 게 아니라, 사는 정이었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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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자랑

우리 세대가 잘한 일? 저는 '악착같음'이라 봅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한 칸 마련하고. 그 악착같음 하나는 자부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놓친 것도 많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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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명절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만두 빚던 그 소리

새벽부터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어요.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손은 바쁘고. 지금은 다들 사 먹지만, 그 시끌벅적한 부엌이 가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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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결혼

우리 영감이랑 만난 이야기

옛날 연애는 별거 없었어. 동네에서 얼굴 익히거나 어른들 중매가 다였지라. 요즘처럼 자유롭게 만나고 영화 보는 건 상상도 못 했지. 말 건네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어.울 영감은 시장 정미소에서 일했지. 어머니가 "성실한 청년"이라며 띄우시대. 그렇게 중매로 몇 번 만나 식 올렸지. 돈 없어도 "둘이 열심히 살면 된다"는 영감이 참 든든했어.신혼 때 월급 봉투 함부로 여는 거 아니랬지라. 그래도 영감이 번 돈 통째로 내 손에 쥐여주며 살림을 맡기대. 그 쌈짓돈 쪼개고 아껴 자식들 키웠지. 지금 생각하면 짠하고 자랑스러워. 그때 우리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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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시절

바당은 우리를 먹여 살렸주

우리 어멍 어릴 적엔 참말로 먹을 것이 귀했지. 뭍에는 굶는 사람이 많았어도, 우리는 바당이 있으니께 먹고 살았주마. 해마다 보리 고개가 오면 아침 해 뜨기 전부터 바당으로 나가는 게 일이었어. 그게 우리 집 식구들 생명줄이었으니.그때는 지금처럼 물질 도구가 좋지도 않았어. 여름엔 그나마 나았지만, 겨울 바당은 또 얼마나 차가운지. 옷이야 얇은 무명옷 한 벌이 다였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바당에 들어가야 했어. 숨이 턱까지 차올라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물속을 헤집었지.전복, 소라, 미역, 해삼. 바당이 내어주는 건 뭐든 귀한 거였어. 그걸 팔아서 자식들 학비 대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손발이 다 터져도 우리 애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저 고마웠지. 옆에 있는 해녀 친구들도 다들 같은 마음이었어.서로 잡아 올린 걸 나누기도 하고, 힘들면 어깨를 빌려주기도 했주. 바당은 무섭고 힘들었지만, 같이 물질하는 동무들이 있으니 그래도 견딜 만했어. 그 고생 덕분에 우리 식구들 살았고, 옆집 식구들도 살았으니께.지금 생각하믄 그 힘든 시절이 다 꿈만 같아. 억척같이 살았던 그 세월이 다 추억이 되어버렸네. 바당은 내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어. 힘들었어도 그 덕분에 우리가 다 살아남았으니, 감사할 따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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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회 날 청군 백군, 그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가을 운동회는 온 동네 잔치였습니다. 만국기 아래서 달리기하고, 부모님은 김밥을 싸 오셨지요. 일 등을 못 해도 공책 한 권 상으로 받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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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조선소 용접불꽃 속 내 청춘

아따, 고마 세월 참 빠르다. 스무 살 넘어 영도 조선소에 발 디뎠으니, 용접봉 잡은 지 어연 오십 년이 넘었네. 쇠 깎고 망치질 소리에 귀 떨어질 뻔했데이. 뜨거운 불꽃 속 종일 씨름했지만, 그게 또 우리 젊음 아이겠나. 고생스러워도 열정 하나로 버텼지. 작업복 기름때 묻히고 땀 흘려도, 동생들이랑 농담 따먹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던 재미가 쏠쏠했어. 실수하면 한소리 했다가도 '괜찮나?' 묻는 정이 있었지. 불꽃 속에서 쇠 녹여 배 한 척 만들 때믄 가슴이 벅차오르데. 우리 손으로 만든 배가 바다로 나갈 때, 내 새끼 보내는 마냥 뿌듯했심더. 가족 먹여 살린 자부심, 그거 하나로 살았데이. 이제 은퇴했지만, 아직도 용접봉 잡던 손맛이 생각난다. 힘들었지만,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네. 그때는 몰랐는데, 그 시절이 내 인생 가장 뜨겁고 찬란한 시간들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모를 기다, 우리 때는 다 그렇게 살았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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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문 앞에서 마주한 세상

나 어릴 적 종로 거리, 학교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렘 가득이었지. 빳빳한 교복에 머리 단정히 묶고 등굣길을 나섰던 기억이 아직도 선해. 골목마다 친구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했고, 발걸음은 어찌나 가볍던지. 굽이굽이 정겹던 골목을 지나 교문이 보일 때면, 또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가슴이 두근거렸어.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참 귀에 쏙쏙 들어왔어. 특히 여학생들만 있던 교실은 늘 웃음꽃이 피었지. 쉬는 시간엔 도시락 까먹는 재미가 쏠쏠했고, 친구들과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다 보면 금세 종이 쳤어. 뜨개질이나 수놓는 시간도 있었는데, 손끝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재미가 남달랐지. 그때 익힌 솜씨가 나중에 양장점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어. 그때는 학용품 하나도 귀했던 시절이라, 연습장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썼어. 시험 기간엔 다 같이 밤늦도록 공부하던 추억도 있고. 비록 지금처럼 풍족하진 않았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즐겁고 든든했던 것 같아.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며 함께 미래를 그리던 순수했던 날들이었지. 지금도 가끔 옛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교문 앞에서 친구들과 헤어지기 아쉬워 서성이던 내가 떠올라. 그 시절의 향기, 그 시절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해. 정말 곱고 아름다운 추억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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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과 돈

내 손으로 번 돈, 그 뿌듯했던 기억

아이고, 우리 젊을 적엔 돈 벌기가 참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어. 시장통 분식집서 하루 종일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 됐지. 요즘 젊은이들은 월급이 착착 들어온다지만, 그 시절 오천 원 만 원이 얼마나 귀했는지 지금은 잘 모를 거여. 우리는 손님들 쌈짓돈 하나하나 모아 간신히 살았으니께. 그렇게 번 돈으로 애들 학용품 사주고, 시장 봐서 반찬거리 몇 개 사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 내 주머니엔 늘 천 원짜리 몇 장뿐이었지만, 그 돈으로 식구들 밥 한 끼라도 더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매일 일했지. 남편 월급도 귀했지만, 내 손으로 직접 번 돈은 왠지 모르게 더 정이 가고 마음이 놓였어. 그때는 통장이랄 것도 변변찮았고, 장롱 속에 비상금 숨겨두는 게 다였지. 그래도 아껴 모은 돈이 나중에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고 우리 노후에 보탬 될 거라 믿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돈의 액수보단 그걸 위해 흘렸던 땀방울, 그리고 그 돈으로 채웠던 가족의 온기가 훨씬 더 소중한 것 같어. 돈 귀한 줄 알아서 더 열심히 살았던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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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으로 재생1
연애와 결혼

그 시절, 설렘 가득했던 첫 만남

요즘 젊은이들 보면 어찌나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지는지, 참 격세지감을 느껴요.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연애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길거리에서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나도 눈인사만 건넬 뿐, 감히 말을 붙이는 건 상상도 못 했답니다. 부끄러움이 많던 시절이었어요. 저도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땐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아는 분 소개로 선을 보게 되었는데, 끽해야 다방에서 짧은 몇 마디 주고받는 게 전부였죠. 처음엔 이렇게 사람을 만나야 하나, 삐딱한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뒤에 작은 편지 한 통이 왔지 뭐예요? 그리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정갈한 글씨체에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그게 참 설레고 좋았답니다. 며칠 뒤 저희 집 앞 공원에서 다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죠. 그때는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게 예의였고, 서로를 더 깊이 헤아리려 노력했지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만나다 보니 어느새 결혼 이야기가 오갔어요. 화려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이었답니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난다는 기쁨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요. 돌이켜보면 그때의 수줍은 연애와 단출했던 결혼식이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페이지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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